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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일보 보도
새벽인력시장은 요즘..  ▲ 10월 4일 새벽 5시,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수진리고개에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다. photo 박용현 인턴기자 “매일 새벽에 나올 때마다 오늘 일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합니다.” 새벽 4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1동 수진리고개에 봉고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깜깜한 밤이고, 깊어가는 가을이라서 쌀쌀한 기운도 느껴졌다. 봉고차 주변으로 한두 사람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사람들이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봉고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태운 봉고차는 하나둘씩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지난 10월 4일이었다. “요새는 일거리가 없어서 사람들도 많이 안 나와요. 예전 같으면 저 건너편까지 사람들로 꽉 찼을 텐데.” 일거리를 기다리던 한 50대 남성 노동자가 기자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도로변에 나란히 세워져 있던 10대가량의 봉고차들은 모두 그날의 일터를 향해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일을 찾아 나온 100여명 중 절반가량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성대고 있었다. 이날 공친 사람들이었다. 또 다른 50대 남자가 “벌써 일주일째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며칠째 일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달에 열흘도 일하기 힘들어요.” 또 다른 중년 노동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잠시 걱정을 늘어놓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수진리고개는 다시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한 시간 뒤인 새벽 5시, 수진리고개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지하철 태평역 주변 인력사무소에 하나둘씩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열 곳 이상은 돼 보이는 인력사무소의 불빛 속으로 건설현장 일을 구하려는 남자들이 몰려들었다. 다들 피곤한 모습이었다. 인력사무소 문을 처음 열고 들어온 40대 남자는 “어제 야간노동이 10시 다 돼서 끝나 5시간밖에 못 잤다”며 “거의 매일 5~6시간밖에 못 자서 잠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30대의 두리 인력사무소 실장은 주간조선에 “일찍 사무소에 나와야 빠른 순번을 받아 일을 구할 수 있다”며 “건설 노동자들이 보통 아침 6시 반에는 현장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주변에 일이 없기 때문에 좀 떨어진 곳까지 가려면 5시에는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한산했던 인력사무소 안은 일거리를 찾아온 30~40명의 남자들로 어느새 발 디딜 틈이 없게 됐다. 잠시 뒤, 사무소로 걸려온 건설사 전화를 시작으로 사무소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일을 할당받은 사람들은 그날 일할 건설 현장의 지도와 대중교통 정보가 적힌 메모를 들고 각자 인력사무소를 나섰다. 두 시간 뒤, 사무소 안에 울려 퍼지던 전화벨 소리가 그치고 사무실 직원들의 분주한 손놀림도 멈췄지만, 아직 일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많았다. 일을 구하러 온 사람의 절반가량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인력사무소 안을 지키고 있었다. “건설 경기가 요즘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인력사무소 사장 김모씨가 말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서성이는 사람들. 이것이 바로 성남 인력시장의 현주소다. 10년째 일당 8만원 동결 ▲ 10월 4일 이른 아침,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한 무료급식소의 식사풍경. 일을 못 찾은 건설노동자, 노숙자, 독거노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박용현 인턴기자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성남 인력시장. 이곳에 인력시장이 형성된 것은 1970년대다.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복구사업이 시작되면서 청계천 주변 움막집에 살던 건설 노동자들이 성남시로 몰려들었다. 임차진 민주노총 경기도 건설지부 사무국장은 전화통화에서 “1980년대부터 성남시엔 한 집 건너 건설노동자가 산다는 말이 돌 정도로 건설노동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성남 인력시장에서 일을 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거리를 알선받는 방식과, 수진리고개에 모여 개인적으로 일을 구하는 방식이다. 수진리고개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안모씨는 “여기서 일 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20년 이상 경력자”라며 “인력사무소를 거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다 전문 기술자들”이라고 했다. 인력사무소 사장 류모씨는 “처음 건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무소로 찾아온다”며 “임금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조건으로 건설사로부터 임금을 받아주기 때문에 인력사무소를 통하면 일당을 떼일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인력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일을 구하면 임금을 떼이는 일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안모씨는 “임금을 떼이면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는데, 그것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중간에 포기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건설노동자 임금은 하루 평균 8만원. 기술자들은 일당 17만원까지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8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30년 경력’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노동자는 “10년 동안 임금이 오르지 않아 계속 8만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10년간 물가가 상승(한 해 평균 3%)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노동자 임금은 여전히 8만원에서 동결돼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건설노동자는 “(10년 전과) 임금이 같아 불만이지만, 최저임금(4850원)을 주는 다른 일보다 힘들더라도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벌이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계속한다”고 했다. 임금이 오르지 않는 원인에 대해 임차진 민주노총 사무국장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차례의 수수료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반 건설업체, 전문 건설업체(단종업체), 도급이사, 십장 등 다단계의 하청을 거치며 수수료를 떼기 때문에 실제 건설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인력소에 일자리를 찾아 나오는 여성들도 있다. 두리 인력사무소의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여자들은 보통 식당 파출부, 가사 도우미, 현장청소(입주청소) 등의 일을 한다”고 했다. 일당은 평균 6만원에서 6만5000원 수준으로 이 역시 “10년간 동결된 상태”라고 한다. 일 구하기 별 따기… IMF 때와 비슷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적으로 건설노동자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9~10시간 정도 일한다. 이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1일 근로시간 8시간을 초과하는 것이다. 한 중년 남성 노동자는 “하루에 보통 10시간 일한다”며 “야간노동을 하는 경우 근로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하는데, 법정 1일 노동시간인 8시간을 넘었음에도 초과수당이나 야간수당 등의 추가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같은 문제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노동자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건설사에서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 노동자는 “조합에 가입하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조합 가입을 꺼린다”고 말했다. 안전 문제도 여전히 지적된다. 건설업체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매일 아침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안전화, 안전모 등의 안전장비를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50대 건설노동자 안모씨는 “부실 단종업체의 경우 안전화 등을 지급하지 않고, 대신 받았다고 서류에 체크만 하도록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인력시장에 나온 건설노동자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일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건설 인력 수요가 반으로 줄었다”며 하소연했다. 건설노동자 안모(52)씨는 “계절을 타기도 하고 국내 경기 문제도 있고 해서, 지금은 작년보다 일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며 “IMF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탄식했다. 두리 인력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나빠져 일을 구하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일거리는 작년의 50% 수준”이라며 “하루 250명 정도가 찾아오지만 100명 정도밖에 일을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500만원 받던 대기업 직원, 지금은 집도 없어 ▲ 일거리를 찾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인력소개소를 찾은 사람들. photo 문재용 인턴기자 건설노동자 박모(53)씨는 건설인력 수요가 줄어든 것에 대해 “조선족, 한족 등 외국인 노동자와 동포들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근 건설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80% 이상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근처에서 일을 구하지 못하고 매번 멀리 나가게 된다”며 “외국인 노동자는 1명이 10명을 데리고 와서 내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계속 뺏고 이로 인해 임금도 오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노동자 안모씨는 “일을 하러 제주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며 “멀리 갈 경우는 2박3일이나 3박4일 일정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건설노동자 김성철(62)씨는 자신의 처지를 “집도 없어서 정자(亭子)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1969년 성남에서 금은방을 차렸다고 한다. 8남매의 장남이었던 그는 “동생들 시집 장가를 보내기 위해” 금은방을 처분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건설사에 취업해 10년간 일을 했지만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대기업 인테리어 부서에 들어가 450만~5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했지만 회사가 인력 구조조정을 하면서 결국 잘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해고 후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그때부터 건설노동자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현장에 종종 나가봤기 때문에 처음 일용직 노동을 할 때 적응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하지만 생전 처음 일하는 사람들은 버티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인과 사별하고 세 딸은 외국으로 나간 이후 연락이 두절돼 지금 혼자 정자에서 지낸다고 했다. “처음에는 전세 살다가 다음엔 월세 살다가, 고시원 살다가, 찜질방 살다가 지금은 결국 정자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요새는 일을 못 구해 수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이 없다 보니 매일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건설경기 역U자형 패턴서 하강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월간 건설경기 동향에 따르면 2011년 7월 국내 건설수주는 공공과 민간이 모두 부진해 지난 7월 실적 기준, 9년 내 최저치인 6조354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26.8% 감소한 것으로 올 들어 가장 높은 폭의 감소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홍일 박사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LH공사의 재정난 등의 문제로 공공 건설이 부진하고 선진국 금융위기 여파로 민간 건설 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김현아 박사는 10월 6일 “세계적으로 건설 경기가 역U자형 패턴을 그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역U자형의 정점을 찍고 하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건설경기의 양적 팽창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건설업체들이나 현장 인력들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재건축, 리모델링 등 관련된 다른 시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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