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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르포]③ '한 손엔 휴대전화, 다른 손엔 담배'...저임 일용
“한국의 모든 공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 지난 1월 15일 새벽 한국공항공사 콜센터로 걸려온 의문의 전화 한 통으로 인천국제공항은 발칵 뒤집혔다. 비상 경계 태세가 발동됐다. 보안 강화를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등장했고, 총든 기동 타격 대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공항 순찰을 돌았다. 폭발물 탐지견들이 항공사 카운터, 화장실 등 폭탄이 설치됐을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아 뛰어다녔다. 승객의 주위를 맴돌고 가방에 쉴 새 없이 코를 들이댔다. ‘테러 위험이 있어 공항 경비를 강화한다.’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로 경비 강화를 알리는 안내 방송도 반복됐다. 경찰 조사 결과, 협박 전화는 중국을 거쳐 걸려 왔다. 국정원과 경찰은 외국인으로 추정하고 발신자를 추적하고 있지만, 아직 발신자가 누구인지, 협박 전화를 건 의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오후 2시쯤 공항청사 3층 병무 민원센터 옆 제한구역 앞에서 기다렸더니 인천국제공항 소속 기동 타격 요원 2명이 순찰을 시작했다. 뒤를 쫓았다. 1시간 30여 분 동안 2인 1조로 구성된 순찰조를 따라 다녔다. 그리고 매우 실망했다. 과연 이런 경비 태세로 숙련된 테러리스트들이 치밀하게 기획한 테러나 막무가내식 ‘자살 테러’를 막을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김포공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도 떠올랐다. 순찰 대원들은 이용객들이 잘 안 보이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순찰을 시작했다. 선임 요원이 공항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 후임 요원은 건물 내부에서 경계 자세를 취했다. 그 시간 만큼 공항 순찰은 중단됐다. 선임 요원이 담배를 피우고, 후임 요원이 다른 곳에서 경계를 서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일상이고 관행이란 느낌이었다.
잠시 뒤 상주 직원 전용 출입문을 나선 공항 기동타격대 2개 조가 동쪽과 서쪽 양방향으로 순찰을 시작했다. 3층 청사 출국장은 동쪽 A발권 카운터에서 서쪽 M카운터로 연결된다. 1개 조 근무자 중 한 명이 근무 시작 5분도 안 돼 H발권 카운터 방향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명은 건물 내부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 공항 보안처 복무규정은 근무자가 순찰 중 휴대 전화를 쓰거나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공항보안처에 문의했더니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바로 잡겠다”고 했다. 당황한 목소리였다. 다른 순찰조도 마찬가지였다. J카운터 앞에 등장한 다른 순찰조는 서쪽 VIP 주차장 쪽으로 순찰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선임 요원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담배를 피웠다. 다른 손으로는 휴대 전화를 들여다 보며 시간을 보냈다. 후임 요원은 선임 요원과 거리를 두고 건물 안에서 경계 자세를 유지했다. 이들은 10분 뒤 반대 방향으로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K카운터 앞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향하던 순찰은 선임 요원이 화장실로 가면서 다시 중단됐다. 후임 요원은 다시 화장실 밖에서 10여분을 기다렸다. 순찰조는 3층으로 다시 올라온 뒤 J카운터 앞에 자리잡고 30여 분간 근무했다. 오후 3시 43분쯤 순찰조는 K-1 소총을 휴대한 공항경찰대 순찰조와 마주쳤다. 공항 보안처 소속 기동 타격대와 공항경찰대의 순찰 동선이 중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공항경찰대 관계자는 "폭발물 설치 협박 전화가 걸려와 경찰 역시 순찰을 돌고 있다. 기관 마다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을 우선 순찰하다 보면 동선이 겹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경비를 용역 업체가 책임지고 있어 저가 계약, 근무자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저가 계약이다 보니 직원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근무 자세에도 문제가 많다는 우려다. 공항 보안 관계자는 “경비 인력의 신분은 인천공항공사와 인력 파견 계약을 맺은 민간 용역업체 직원들”이라며 “테러리스트와 대치하는 긴박한 순간에는 오히려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공항 경비 인력은 정작 테러리스트 제압 등 실질적인 경비를 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테러에 대한 대응은 경찰과 군 병력이 담당한다. 인천공항 보안과 경비는 공개 입찰을 통해 선정된 3개 용역 파견 업체가 맡고 있다. 계약 기간은 ‘3+2년’으로, 3년 계약 이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계약이 2년 더 연장된다. 낮은 금액으로 공항 경비 계약을 따낸 인력 업체들이 이익을 내려면 파견 인력들의 인건비를 최대한 낮춰야 하는 구조다. 결국 저임금에 고용된 민간인들이 국가 주요 시설인 인천공항의 안전을 책임지는 셈이다. 인천공항만 민간인들이 경비를 맡는 것은 아니다. 미국 LA 공항 경비는 경찰과 함께 용역 업체가 맡는다. 보안 검색은 연방정부가 직접 지휘, 통제, 운영한다. 영국 히스로 공항은 직접 채용한 경비 인원을 쓴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은 용역 업체에 경비를 맡기고 있다. 일본 나리타 공항, 싱가포르 창이 공항, 호주 시드니 공항도 용역업체가 경비와 검색 업무를 보고 있다. 중국 베이징 공항은 공항 자회사가 맡고,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은 검색과 경비 모두 항공 보안 관련 정부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총기 소지 여부도 논란이다. 평상시 인천공항 보안 요원들에겐 총기가 지급되지 않는다. 총기는 무기고에 있다.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경찰의 지휘와 통제를 받아 총기를 지급 받는다.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경찰대는 경계 태세가 강화돼도 총기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경찰에게 실탄이 없는 총기를 휴대하도록 하고 있다. 테러리스트와 대치하는 긴박한 순간 ‘빈 총’을 든 요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 상황에선 한계가 명확하다. 미국은 공공 장소나 국가 주요 시설 경비 인력들의 무장을 당연시한다. ‘공항에선 테러 관련 어떤 농담도 하지 마라'는 경고판이 붙기도 한다. 공항 안전 요원의 요구를 거부하면, 즉각적이고도 단호한 물리적인 제재가 가해진다. 과도한 보안 태세, 지나친 무장 경비로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과 미드웨이 공항에서는 공항 경찰대가 총기 없이 근무를 서고 있다. 시카고 항공국 관계자는 "두 공항의 폭력 범죄 사건 발생률은 매우 낮으며 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공항순찰대 관계자들은 "테러가 발생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미국 내 다른 법 집행 요원들처럼 우리에게도 총기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테러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986년 9월 14일 서울 아시안게임 개막 6일을 앞두고 김포공항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2009년 83건, 2010년 57건, 2012년 59건, 2013년 41건 등 테러 위협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지난 21일엔 중국 밀입국자 2명이 인천공항 출입문을 뜯고 버젓이 입국, 며칠 동안 국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들이 단순 밀입국자가 아니라 테러리스트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가상 테러리스트'로 생각하고 공황의 경비 태세를 간단히 점검한 결과, 우리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의 테러 준비 태세는 ‘0점'에 가까웠다. 염돈재 전 국정원 제1차장은 “인천공항이 그간 보안보다 서비스에 치중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도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항과 항만 등 국가 중요 시설의 테러 대응 태세를 종합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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